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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Empire Builder (3/3)

구사과 2024. 4. 20. 15:27

Day 3

Mississippi River

미네아폴리스 근처에서 일어났다. 전날과는 달리 잘 잤고, 상쾌하게 일어났다. 시애틀을 떠난 후 처음 보는 대도시였고, 여행이 끝나간다는 실감이 나게 했다.

아침은 전날 점심 식사를 같이 한 미네소타 할머니와 LA에서 오신 노부부 분들과 함께했다. 노부부 분들은 LA에서 시애틀, 시애틀에서 시카고, 시카고에서 뉴올리언즈로 가는 기차를 연달아 타시는 것 같았다. 태평양 연안과 미시시피 강을 종주하는 코스로, 기차로만 해도 일주일 정도가 걸리는 코스이다.

기차는 세인트 폴 - 미네아폴리스에서 30분 이상 길게 정차한다. 창밖으로 미시시피 강이 쏟아지는 멋진 풍경의 역이었다. 밖에 나가서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기차 밖으로 나가면 기차가 강을 가리고 있어서 (...) 그럴 수는 없었다.

아름다운 역으로, 다음에 미네아폴리스에 제대로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미시시피 강을 끼고 기차는 세인트 폴을 벗어난다.

그리고 계속 미시시피 강을 따라간다.

사실 마지막 날의 경로는 기차를 타기 전에 잘 몰랐는데, 미시시피 강을 쭉 따라서 시카고까지 내려가는 경로였다. 일어나자마자 미네아폴리스가 보여서 이제는 도시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마지막 날도 경치가 좋고 인기가 많은 코스였다. 이 날의 풍경은 분명 자연이지만, 전날의 날 것 그대로보다는 훨씬 더 순화된 느낌이었다.

지금 정차한 역은 미네소타의 Red Wing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이 경로에는 이 마을 말고도 강변을 따라 작고 예쁜 시골 마을들이 많이 줄지어 있다. (물론 작다는 것은 상대적인 기준으로, 전날 본 마을들보다는 훨씬 클 수도 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도로는 61번 국도로, 밥 딜런의 그 도로가 맞다.

미시시피강을 건너서 La Crosse 역에 도착하면, 이제 강은 보내주게 된다.

그리고 점심을 먹는다. 정말 아쉽게도 이때 같이 앉은 분들이 누구신지는 까먹었다.

기차는 밀워키를 거쳐서 시카고로 떠난다. 강을 보내준 이후에는 보통의 기차랑 크게 다르지 않다. 경치라고 할 만한 것이 많지 않고, 그냥 건너서 길이랑 마을 좀 보이는 정도. 웃기게도 날씨 역시 이 구간에서 우중충해졌다. 시애틀에서도 보지 못한 먹구름을 이 날 처음 보았다. 밀워키를 가기 전에 기차 승무원이 침대칸을 접어서 의자석으로 바꾼다. 나중에 해달라고 부탁할까 했지만 진상일거 같아서 그냥 가만히 앉아갔다.

46시간의 여정을 끝으로 기차는 드디어 시카고에 도착한다. 생각해보니, 기차 승무원이 친절하게 많이 도와줬지만 그만 팁을 주는 것을 까먹었다. 여러분들이 혹시 이 기차를 탈 일이 있다면, 그리고 승무원에게 만족했다면, 꼭 내리기 전에 승무원에게 팁을 주고 가자. (가능하면 내 것까지 두배로 내 주면 좋다)

호텔에 도착한 후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살짝 자고, 한 9시쯤에 피자를 시켜놓고 pickup하러 호텔 밖으로 나왔다. 앞서의 먹구름을 빠져나오지 못했기에, 시카고에는 비가 살짝 오고 있었다. 사진은 아까 내렸던 Union Station. 우산하고 피자 들면서 겨우 찍은 사진이다.

Union Station을 오면서 돌아봤는데 플랫폼이 Chicago River 근처에 묻혀있는? 느낌의 독특한 구조였다. 역에서 내릴 때는 전혀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신기했음

그리고 "그 피자" 를 먹었다. 맛있었음

Day 4

Chicago

ㅇㅇ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후 중심가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시카고에 대해서는 특별히 아는 것이 없었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점에서 이날 시카고에서 받은 첫 인상은 강렬했다. 여러 면에서 신기했는데

  • 도시가 굉장히 아름답다. 특히 강을 따라 늘어진 풍경이 인상깊었다.
  • 그런데 강을 따라서 갈 수가 없다. 강 바로 앞은 전부 저 고층 건물의 사유지고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 고층 마천루가 즐비한 Downtown의 거의 중심부에 있는데도 sketchy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나가면서 Willis Tower의 Observation Deck으로 가는 이정표를 봤는데, 그냥 평범한 건물이라고 생각하고 신경쓰지는 않았다. 알고보니 옛날에 Seers Tower라고 불렀던, 25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고 한다.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찍을 걸... 솔직히 아래에서 보면 다 높아보여서 알기 힘들다.

Downtown의 "정말 중심" 에 오면 시카고 강을 따라 산책로가 있다. 물 색깔도 다른 걸 보면 여기는 관리를 하는 것 같다.

이 근방의 좁은 곳에서 보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도시로서 내가 본 곳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Marina City Chicago, 로컬들은 Corn Tower라고 부르는 것 같다. Yankee Hotel Foxtrot 때문에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이후부터는 시카고에 사는 친구를 만나서 같이 다녔다. Wildberry Pancakes라는 곳을 가서 팬케익과 오믈렛 등을 시켰다. 오믈렛에서는 미묘하게 파전 느낌이 나서 맛있게 먹었다.

Michigan Lake Shore를 들렀다. 당연하지만 호수 반대편은 전혀 안 보인다. 거의 바닷가라는 느낌이다. 호수와 그를 따라 나 있는 공원은 정말 아름답다.

그 유명한 계란. 그리고 시내 투어를 더 하고 친구 레지던스에 잠시 들어가봤다. 호수가 보이는 신축 초호화 레지던스에 사는데 나랑 월세가 비슷하다는 얘기를 듣고 슬펐다. 역시 대황보스턴. 레지던스에서도 정말 훌륭한 풍경들이 있었지만 글에는 생략

슬슬 걸어서 돌아갔다. 여담으로 이 동네 차들은 서울급 혹은 그 이상으로 사납다. 뉴욕 보스턴만 돌아다니다가 약간 문화충격 받았음.

지하철이 고장나서 비행기값의 반값 정도를 우버에 지불하고 공항으로 돌아갔다.

Thoughts

여행 갔다온 직후의 enthusiasm이 살짝 빠진 상태로 회고함을 감안하면 좋다. 글이 6주나 밀렸고, 밀린 사이에 Eclipse를 보러 즉흥적으로 꽤 빡센 로드트립을 한번 다녀왔다 (그리고 그 enthusiasm이 아직도 전혀 안 빠졌다).

  • 서비스의 질은 대충 비행기 비즈니스석 정도를 생각하면 얼추 맞는다. 그것보다 크게 좋거나 크게 나쁘지 않다.
  • 1인으로 왔을 때 Roomette 자리가 불편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다. 체형이 많이 크지 않으면 좁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 같고, 뷰는 충분히 좋다. 더 큰 방이 있으면 개인 샤워실/화장실이 제공되는데, 공용 샤워실이나 화장실에 사람이 많거나, 더럽거나 한 느낌은 전혀 없었음. 굳이 싶은 생각. 2인으로 오면 위쪽 침대는 뷰가 없어서 Roomette가 확실히 불편할 것 같다.
  • 시애틀 출발 기준, 진행 방향 왼쪽을 보는 뷰가 West Montana 지역을 보기 가장 좋다. 난 좌석 지정을 하는 방법을 못 찾았고 오른쪽을 보는 자리에 걸렸는데 혹시 하는 방법을 안다면 잘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오른쪽을 보는 자리에 걸려도 설경은 멋지고, 나는 해가 떠 있을때는 거의 Observation Car에 있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 시애틀 → 시카고가 좋은지 시카고 → 시애틀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이 여행의 핵심은 Washington Cascade Range → Glacier Park로 이어지는 산맥인것 같은데, 일단 이론상으로는 시애틀에서 출발하면 Cascade를 못 보고 시카고에서 출발하면 Glacier Park를 못 보는 것 같다. 나는 시애틀에서 출발하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두 방향을 다 해보지 않고서 판단하기는 어려운듯.
  • 이 루트를 기차 여행으로 다닐 때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장점은 1) 겨울에도 다닐 수 있다 2) 큰 준비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인 것 같다. 일단 이 지역은 겨울에 아주 추워지기 때문에 차로 다니기는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 있어서 겨울에 이 지역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장점이 제일 큰데, 대륙을 육로로 횡단하면서 즉흥적으로 막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한다. 비용 면에서도 사실 굉장히 저렴한 편이고, 투자 대비 효율이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 다만 기차 여행이 이 경로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기차의 스케줄을 따라가야 하기에 자유도가 한정적이고 할 수 있는 것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최적의 방법은 차로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이 여행을 해 봤다면 나중에는 차로도 다녀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시간, 경비, 노력 면에서 차이가 크게 난다. 그런 점에서 기차 여행이 주는 메리트는 확실히 있다)
  • 외향적인 성격은 아닐 뿐더러 영어조차 그렇게 잘 하지 못해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랜덤하게 밥 먹는게 쉽지만은 않았다. 시카고에 돌아가서 쓰러진 것도 아마 그 피곤함 때문일듯.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여행은 랜덤한 사람들이랑 말을 트지 않으면 의미가 꽤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이니 꼭 나가서 말을 걸어보자.
  • 식당칸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다수가 전체 (혹은 거의 전체) 루트를 따라가는 사람들이고, 로컬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pacific northwest + midwest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은퇴하신 분들이 많았다. 나 정도 나이는 드물었다. 아마 상술한 현실적인 문제들로 이 여행을 하시는 분들일듯.
  • 암트랙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는데 난 이 기차 여행을 하면서 특별히 실망스러웠던 것은 방이 추웠던 것 빼고는 없었다. 최종 목적지 기준으로는 지연도 전혀 없었다 (애초에 스케줄이 널널하게 짜여 있지만). 기대치를 어느 정도 낮추고 타면 아주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 Glacier National Park는 이 기차가 국유화되기 전의 운영사가 19세기 말에 미국 의회를 로비해서 만들어진 국립공원이다. 시애틀에서 기차를 타고 Glacier NP 근처에서 내려서 렌터카로 근처를 여행한 후, 다시 기차를 타고 시카고로 돌아가는 루트는 여러 면에서 (역사적, 현실적, 환경적)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든다. 아마 성수기에는 기차 값이 훨씬 비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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